치매 예방 전략에서 고혈압과 당뇨병 같은 심혈관·대사질환 관리의 중요성은 오래전부터 강조돼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당수 환자가 자신이 고혈압이나 혈당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으며, 이러한 진단 사각지대가 예상보다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공동연구진은 아프리카 원주민 집단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집단을 대상으로 고혈압과 혈당 이상에 대한 미진단 현황을 분석한 결과, 심혈관·대사질환이 진단되지 않은 사례가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혈압과 혈당 이상은 일부 집단에서 인지기능 저하 및 알츠하이머병 관련 생체표지자 변화와 연관성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학술지 npj Dementia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나이지리아 이바단(Ibadan), 미국 인디애나폴리스(Indianapolis), 미국 텍사스 북부(North Texas), 케냐 도시 지역 등 네 개 코호트에 참여한 약 7,000명의 성인을 분석했다. 연구 대상은 아프리카 원주민 집단과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아프리카계 이주 후손) 집단을 모두 포함했다. 연구진은 실제 혈압과 공복혈당 수치를 측정한 뒤, 참가자가 해당 질환을 진단받았다고 인식하고 있는지를 비교해 미진단 여부를 평가했다.
분석 결과, 미진단 고혈압은 특히 아프리카 지역에서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객관적으로 고혈압 기준에 해당했음에도 자신이 고혈압이라고 인지하지 못한 비율은 나이지리아 이바단에서 67%, 케냐에서 53%에 달했다. 반면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와 텍사스 북부에서는 각각 21%, 28%로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준이었다.
혈당 이상에 대한 미진단 비율은 더욱 높았다. 공복혈당이 비정상적으로 높았음에도 당뇨병 또는 당뇨 전단계 진단 사실을 알지 못한 비율은 나이지리아에서 93%로 가장 높았으며, 케냐는 61%, 인디애나폴리스는 54%, 텍사스 북부는 56%를 기록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심혈관·대사질환의 실제 유병률뿐 아니라 질환 인식과 진단 체계의 격차 역시 중요한 공중보건 문제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인지기능과의 연관성도 확인됐다. 혈당 이상은 케냐와 텍사스 북부 코호트에서 인지장애 위험 증가와 유의한 관련성을 보였다. 케냐에서는 혈당 이상이 있는 참가자의 인지장애 위험이 약 2.5배 높았으며, 텍사스 북부에서는 약 1.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번 연구에서는 고혈압과 인지장애 사이의 일관된 유의한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특히 텍사스 북부 코호트에서 혈액 기반 알츠하이머병 생체표지자 분석도 수행했다. 그 결과 수축기 혈압이 180mmHg 이상인 중증 고혈압 환자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pTau217, pTau181, 신경손상 지표인 NfL 수치가 더 높게 나타났다. 또한 당뇨병 기준에 해당하는 고혈당 상태는 NfL 증가와 연관됐으며, 알츠하이머병의 대표적 바이오마커인 Aβ42/40 비율 감소 경향도 관찰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조절되지 않은 심혈관·대사 이상이 뇌 건강과 관련된 생물학적 변화와 연관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연구는 또한 미진단 현상이 단순히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미국 코호트에서도 상당수 참가자가 자신의 혈당 이상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는 의료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에서도 진단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가 단순한 국가 간 소득 수준보다는 의료 접근성, 건강 문해력, 사회경제적 환경, 문화적 요인 등 복합적인 요소와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진단 위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지역마다 달랐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미혼 상태가 고혈압 미진단 위험 증가와 관련됐고, 케냐에서는 빈곤 수준이 높을수록 혈당 이상을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반면 미국 일부 코호트에서는 연령, 성별, 교육 수준, 결혼 여부 등이 미진단 여부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모든 지역에 동일한 예방 전략을 적용하기보다 각 지역의 사회·문화적 환경을 고려한 맞춤형 접근이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단면 연구라는 점에서 미진단 심혈관·대사질환이 실제로 치매를 유발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한 국가별로 의료체계와 진단 방식이 다르고 일부 분석은 표본 규모가 제한적이어서 결과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심혈관·대사질환의 조기 발견과 관리가 치매 예방 전략의 중요한 축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아프리카와 아프리카계 인구 집단에서 진단 사각지대를 줄이는 노력이 뇌 건강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아프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집단을 아우르는 초기 대륙 간 비교 연구 가운데 하나로, 단순한 질환 유병률이 아니라 ‘진단되지 않은 위험 요인’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치매 예방 전략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질환 치료뿐 아니라 위험 요인을 조기에 발견하고 인식하게 만드는 의료·보건 시스템 강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npj dementia에 게재됐다. <저작권자 ⓒ 치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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